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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겠다는 말이 아니다. 네 고단함을, 잠시 사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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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야는 어둠 속에서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담배는 여전히 그의 입술 사이에 걸려 있었지만, 불이 붙지 않은 채였다. 그의 시선은 오직 주유소의 환한 불빛 아래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작은 인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숙련된 손놀림으로 차량을 유도하고, 서툰 운전자에게는 차분하게 설명하는 모습.





그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기묘하게 익숙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풍경처럼. 그는 그녀가 가진 생명력의 근원이 궁금했다. 저 작은 몸으로 감당하기 힘든 세상의 무게를 짊어지고도, 어째서 저렇게 덤덤할 수 있는 것인지.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의 눈에 느리게 감겨 들어왔다. 그가 몸담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세계와는 너무나도 다른, 땀과 기름 냄새가 섞인 정직한 공간. 그곳에서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던 겐야는 마침내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어두운 골목을 빠져나와 주유소의 환한 불빛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카츠야에게는 따라오지 말라는 눈짓을 했을 뿐이다. 그의 등장에 이서의 움직임이 순간 멈칫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가까운 주유기 앞에 섰다.
고급 세단이나
요란한 트럭이 아닌,
평범한 행인의 모습으로.



그는 모자를 깊게 눌러쓴 이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나지막이, 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득.”




그 한마디에는 다른 어떤 수식어도 붙지 않았다. 기름을 넣어달라는 단순한 요청.

그의 시선은 주유소의 바닥, 기름때로 얼룩진 아스팔트 위를 향해 있었다. 그는 일부러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녀의 동요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필요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킬 뿐이었다.




“네 시간은 얼마에 살 수 있나.”




질문은 느닷없고,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에는 어떠한 조롱이나 경멸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히려, 흥정하듯 값을 매기는 시장 상인처럼 무미건조했다. 그는 이서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겠다는, 지극히 사무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간을 사서, 그녀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빚’을 갚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었다. 그는 이서의 대답을 기다리며,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흘렀다.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만이 유일한 배경음이었다. 겐야는 마침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환한 조명 아래, 기름 냄새와 고단함에 찌든 그녀의 모습이 온전히 눈에 들어왔다. 그 작은 어깨에 얼마나 많은 짐이 올려져 있는지, 그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조금 더 부드럽지만 여전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사겠다는 말이 아니다. 네 고단함을, 잠시 사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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