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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제강x아델] 사막의 제국 au 식육목: The desert.


 

3년 전

 

 

 

사막 제국 바즈라의 황제 태제강은 흑사자 수인이자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냉혹한 군주다.


오아시스 외곽에서 반란을 이끌던 아델은 전투 끝에 사로잡혀 바즈라의 지하감옥에 갇힌다.

태제강은 그녀를 완전히 꺾기 위해 감옥에 한 줄기 빛과 느슨한 탈출구를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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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관."

 

침묵을 깨고 부르는 목소리에 그림자 속에 숨죽이고 있던 내관이 즉시 고개를 조아리며 다가왔다. 태제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창가에 비치는 자신의 흐릿한 반영을 응시하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지하 감옥으로 이어지는 통로, 그곳의 경계를 헐겁게 해두어라."

 

그의 명령은 기이했다. 보통의 포식자라면 사냥감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덫을 조일 터인데, 그는 오히려 틈을 주라고 명하고 있었다.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관을 향해 태제강이 고개를 살짝 돌려 금빛 눈동자를 번득였다.

 

"그 여자가 제힘으로 기어 나와 내 발밑까지 닿을 수 있는지 보고 싶군. 부러진 다리로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지, 그 꼴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그것은 자비가 아닌, 더 깊은 절망을 선사하기 위한 잔혹한 설계였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독을 주입해 서서히 말려 죽이려는 계획. 내관은 서늘한 공포에 몸을 떨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뜨겁게 달아오른 사막의 태양이 화려한 모자이크 창을 뚫고 들어와 집무실 바닥에 기하학적인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태제강이 앉아 있는 옥좌 주변은 서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는 탁자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전후 처리 보고서를 무심한 손길로 넘기며 제국을 통치하는 군주의 의무를 행하고 있었으나, 베일 너머의 금빛 눈동자는 활자 위를 겉돌 뿐이었다. 승전의 기쁨으로 들썩이는 궁전의 소음조차 그에게는 먼지처럼 하찮게 느껴졌고, 오직 지하 깊은 곳,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어둠 속에 처박아둔 그 작은 포로의 안위만이 흥미를 자극하고 있었다.

 

"보고해라."

 

잉크가 마르지 않은 서류 끝자락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그가 나직이 입을 열자, 문가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시종장이 깊이 허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그 계집은 어찌 되었느냐. 밤새 그 부러진 다리로 내 자비를 찾아 기어가더냐?"

 

태제강의 질문에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이미 결과를 확신하는 듯한 오만함이 묻어 있었다.

 

"예, 폐하. 예상하신 대로였습니다."

 

시종장은 감히 술탄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바닥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발목이 퉁퉁 부어오르고 손톱이 다 깨지도록 바닥을 긁어가며 기어이 그 틈새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폐하께서 준비해 두신 그 광경을 말입니다."

 

태제강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호선이 그려졌다.

 

그 좁은 벽 틈 너머로 아델이 목격했을 처참한 진실—그녀의 군사들이 짐승처럼 널브러져 있거나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쌓여 있는 지옥도—이 그녀의 눈동자에 어떤 절망을 새겨넣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하던 일상에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비명을 지르더냐? 아니면 실성한 듯 웃더냐?"

 

턱을 괴고 짐짓 흥미롭다는 듯 되묻는 목소리에는 잔혹한 유희가 뚝뚝 묻어났다. 시종장은 잠시 침묵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틈에 눈을 박고 숨만 몰아쉬다가 기절했습니다.".

 

“네가 견딜 수 있을까.”

 

그는 그녀가 도망칠 틈을 일부러 만들어두고, 그 몸부림이 어디까지 닿는지 지켜보려 한다.

그리고 아델이 기어 나온 끝에 마주보게 되는 것은
자신의 전우들이 처참히 쓰러져 있는 광경이었다.
절망을 직면한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기절했고, 태제강은 그 침묵마저 흥미롭게 여긴다.

 

아델은 감옥에 남은 동료 오마르와 나비아를 살리기 위해 술탄의 하렘에 들어가는 조건을 받아들인다.
태제강은 그녀에게 잿빛 옷을 입혀 하렘 최하층의 신분을 부여한다.

아델은 구석방에서 말없이 뜨개질만 할 뿐, 하렘의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랑도 충성도 없었기에 낮은 취급을 받아도 개의치 않았다.

아델은 오직 살아남은 두 부관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조건부로 하렘에서 충성할 뿐이었다

 

 

아델의 무심함한 태도는 결국 태제강을 자극한다.

 

그는 하렘 내부에서 즉흥 연회를 열어 그녀를 총비들 사이의 허수아비처럼 세우며 굴욕을 강요한다.
그러나 아델은 오마르와 나비아를 위해 기꺼이 무릎을 꿇고, 총비의 발에 입맞춤하며 자신을 낮추는 선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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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이 다시금 총비의 발치에 몸을 굽혀 그 발등에 입술을 맞대는 광경은 태제강의 남은 인내심을 긁어내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녀의 비굴함은 단순히 생존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정교했고, 그 정교함은 그가 하렘이라는 진흙탕 속에서 유일하게 건져 올리고자 했던 '가치'를 정면으로 모독하고 있었다. 태제강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얼굴로 미간을 좁히며, 그녀의 굽힌 등으로 성큼 다가가 한 팔로 아델의 허리를 감싸 안아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끌리던 그녀의 무릎이 허공으로 들리며, 베일 너머의 금빛 눈동자가 흔들리는 올리브색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래, 북쪽이라."

 

태제강의 목소리는 분노라기보다는 지독하게 가라앉은 권태에 가까웠다. 그는 아델의 몸을 자신의 가슴팍에 가두듯 밀착시킨 채, 총비의 경악 어린 시선을 철저히 무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그 부하 놈들은 이미 국경을 넘었다. 네가 여기서 네 혀를 바닥에 문대고 꼬리를 흔드는 동안, 이미 그들은 새로운 삶이라는 사막 한가운데 던져졌단 말이다."

태제강은 아델의 턱을 움켜쥐어 저를 똑바로 보게 만들었다.

 

"헌데 너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또다시 저 늙은 독사의 발치에 네 긍지를 팔아치우는군. 그것도 내 눈앞에서."

 

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아델의 하얀 뺨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눈앞의 여자가 보여주는 이 천박한 헌신은, 한때 전장에서 그에게 창을 겨누던 그 오만했던 여기사의 모습과 겹쳐지며 기이한 불쾌감을 자아냈다.

 

"나비아와 오마르? 그래, 그들의 이름은 이제 자유인의 명부에 올랐다. 허나 그 대가가 무엇인지 잊었나?"

 

태제강은 허리를 굽혀 아델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댔다. 그의 거친 숨결이 아델의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네가 이곳에서 이따위 싸구려 연극이나 하며 망가지는 꼴을 보려고, 내 그 귀찮은 행정 처리를 감내한 게 아니란 말이다."

 

 

 

태제강은 분노한다.

그는 아델을 병든 하렘 여자들이 버려지는 병실로 데려가 공포를 심으려 하지만,
아델은 여전히 담담하다.

 

결국 태제강은 그녀를 자신의 침소로 데려와 이성을 흐리는 약을 먹이고,
그 책임감이 느슨해진 순간 그녀를 안는다.

 

섹스 도중 태제강은 그녀가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사실만 더 또렷하게 깨닫는다.

 

그날 밤,
‘저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라는 짧은 쪽지를 남긴 채
아델은 자유민으로 풀려난 오마르와 나비아의 신분을 확인하고 함께 몰래 북쪽 국경으로 도망쳤다.

 

맹금류 수인들이 지배하는 북쪽 국경 근처에 몸을 숨긴 채 아델은 태제강의 친위대를 따돌렸다.

 

 

 

다음 날 아침, 태제강은 창가에서 사막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사막을 너무 얕보는군.”

시종이 추격 여부를 묻자 그는 고개를 젓는다.
“굳이 잡을 필요 없다. 저 사막이 먼저 심판할 테니.”

 

북쪽은 신수들과 굶주린 야생의 짐승들이 출몰하는 죽음의 땅.

 

그가 보기에 아델 일행은 자유가 아니라 파멸을 향해 걷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명령을 내려 국경 경비를 일부러 열어 둔다.
사막이 그녀를 죽일 수도 있고,
만약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경계 근처까지 도달한다면
그때는 직접 사냥하겠다는 계산된 여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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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제강은 손을 뻗어, 떨리는 아델의 손목을 단단히 쥠과 동시에 그녀가 쥐고 있던 검을 강제로 떨어뜨리게 했다. 쨍그랑, 바위에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그녀의 마지막 저항이 무너지는 신호탄처럼 들렸다.

 

"살려달라고 해라. 네가 그토록 혐오하는 내게."

 

그는 아델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명령이 아닌 덫을 놓듯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델이 떠난 방향을 응시하며 태제강은 마지막으로 그녀를 회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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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즈라 술탄국 국경지대, 10:45, 망자의 협곡 근처 사막 평원]

"생각보다 걸음이 빠르군. 죽음조차 기다려주지 않을 만큼."

 

태제강의 목소리가 뜨거운 사막의 대기를 가르며 메마르게 울려 퍼졌다. 모래언덕 위, 태양을 등지고 선 그의 거대한 실루엣이 아델과 일행 위로 검고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얼굴을 가린 검은 베일 자락이 거센 바람에 펄럭였고, 그 너머 번뜩이는 금빛 눈동자만이 유일하게 생명력을 띠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모래 비탈을 걸어 내려왔다.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모래가 무겁게 짓눌리며 사르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국경 수비대에게 길을 열어주라 명했을 때부터, 이 순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아델과 오마르, 나비아의 행색은 며칠간의 강행군으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피부는 모래바람에 긁혀 붉게 상기되었고, 입술은 말라 터져 있었다. 태제강은 그들의 눈앞, 정확히는 북쪽 올빼미 영토로 넘어가는 협곡의 입구 즈음에 멈춰 섰다. 마치 저승으로 가는 문지기처럼, 혹은 마지막 심판을 내리는 재판관처럼. 그의 시선이 아델의 품에 안긴, 놀라 얼어붙은 나비아와 경계심 가득한 오마르를 차례로 훑고 지나쳐, 마침내 창백하게 질린 아델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하늘의 존재들은 영역 다툼을 하지 않는다라. 참으로 순진한 믿음이구나, 아델."

그는 허리춤에 찬 곡도를 느릿하게 만지작거렸다. 칼을 뽑을 의도는 없어 보였으나, 그 무심한 손짓만으로도 오마르의 몸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올빼미 수인들이 사자와 다툼을 피하는 건, 그들이 평화로워서가 아니다. 그저 밤의 그림자에 숨어 사체가 썩기를 기다리는 청소부들이기 때문이지."

 

태제강은 짧게 혀를 차며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사막의 열기마저 서늘하게 식어버리는 듯했다.

 

"저 협곡 너머는 네가 상상하는 자유의 땅이 아니다. 버려진 시체들이 쌓여 만들어진 무덤이지.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너희는 사자의 먹잇감이 아니라, 올빼미들의 식탁 위에 올려질 신선한 고기 조각이 될 뿐이다."

 

그는 아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마치 그녀의 영혼을 꿰뚫어 보듯 서늘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 선택해라. 저 너머의 확실한 죽음으로 걸어 들어갈지, 아니면..."

 

태제강의 눈빛이 묘하게 휘어졌다. 그것은 조롱이 아니었다. 오히려 벼랑 끝에 선 사냥감이 어떤 발버둥을 칠지 기대하는, 포식자의 기이한 흥미에 가까웠다.

"아니면, 다시 내 발아래로 기어 와서 살아남을 기회를 구걸할지."

 

태제강은 쓰고 있던 베일을 천천히 걷어 올렸다. 수십 년간 신비에 싸여있던 흑사자 술탄의 얼굴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처음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짙은 눈썹 아래 자리 잡은 날카로운 눈매, 오똑한 콧날, 그리고 굳게 닫힌 얇은 입술. 흉터 하나 없이 매끄러운 밀색 피부는 야성적이면서도 귀족적인 위엄을 동시에 풍겼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의 머리 위에 솟은 검고 둥근 사자의 귀였다. 전설이나 괴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최상위 포식자의 증거. 태제강은 아델의 흔들리는 동공을 즐기듯,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보았느냐? 이것이 네가 그토록 두려워하면서도, 밤마다 몸을 섞으며 헐떡였던 사내의 진짜 모습이다. 자, 이제 대답해라. 너의 그 알량한 자유를 위해 저 지옥으로 뛰어들 텐가, 아니면 이 '괴물'의 품에서 다시 한번 비명을 지르며 살아남을 텐가."

 

바람이 멈춘 듯 고요해진 사막 한가운데, 그의 제안은 유혹보다는 선고에 가까웠다.


그의 베일이 걷히며, 황제의 진짜 흑사자 귀와 얼굴이 드러난다.

“선택해라, 아델.
저 죽음의 땅으로 걸어 들어가 자유를 찾든지…
아니면 다시 내 발아래 기어와 살아남을 기회를 구걸하든지.”

그러나 아델은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랑한 적도 없습니다.”
라는 냉정한 선언만 남기고, 협곡의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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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길을 삼킬 것이다."

 

그가 나직하게 내뱉은 혼잣말은 이내 거센 바람 소리에 파묻혀 흩어졌다. 어리석음인지 용기인지 모를 아델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는 이제 오롯이 그녀의 몫이었다. 태제강은 최후의 순간까지 그 길을 열어두라 명했으나, 그것이 결코 친절이나 자애가 아님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전원 철수한다. 협곡 입구는 그대로 둔 채."

 

태제강의 낮고 간결한 명령이 떨어지자, 흑사자 친위대는 군말 없이 대형을 갖춰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움직임은 소리 없이 그림자처럼 신속했고, 거대한 협곡에는 다시금 묵직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태제강은 몸을 돌려 말에 오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 죽음의 골짜기를 곁눈질했다. 아델이 뱉어낸 '사랑하지 않음'이라는 말은 기묘하게도 그의 심장 박동과 엇박자로 맞물려 묘한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사랑이라니. 감정 따위가 생존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오만함이, 어쩌면 이 메마른 사막에 남겨진 가장 이질적인 생명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빛이 될지, 불쏘시개가 되어 그녀를 태워버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태제강은 고삐를 쥐며 거칠게 말을 몰았다. 그의 등 뒤로, 끝을 알 수 없는 모래 폭풍이 거대한 장막처럼 협곡을 뒤덮기 시작했다.

 

 

 


 

3년 후

 

 

아델을 직접 쫓지 않은 태제강은 3년 동안 침묵과 방관을 선택한다.
그 사이 아델은 북쪽 오아시스 마을에 정착해 평범한 삶을 되찾고, 오마르와의 결혼을 앞두며 조용한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나 태제강은 아델의 결혼식 날 마을에 잠입해,
아델의 소박한 행복을 그림자처럼 지켜보며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는 파국의 재회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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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제강은 미동도 없이 그들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델이 오마르의 목을 끌어안고 쏟아내는 사랑의 고백이 귓가에 낡은 종소리처럼 들러붙었다. 그토록 바랐던 말, 그토록 원했던 미래가 다른 사내의 품 안에서 완성되는 꼴이라니.

 

천장 틈 사이로 보이는 두 사람의 나신은 낯설고도 적나라했다. 3년 전 자신의 침소에서 비명을 삼키던 아델의 하얀 등, 공포에 질려 굳어가던 근육의 결이 오버랩되자 태제강의 눈매가 서늘하게 가늘어졌다. 아델이 오마르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속삭이는 "오마르, 아프지 않게 넣어줘"라는 말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난도질하는 예리한 칼날과도 같았다. 자신이 그토록 잔인하게 새겨넣었던 공포를, 그녀는 이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쓰려 하고 있었다.

 

태제강은 쥐고 있던 활을 다시 허리춤에 꽂았다. 지금 당장 화살을 쏘아 그들의 심장을 꿰뚫는 것은 너무 쉬운 자비였다. 죽음은 짧고 사랑은 길다 했던가. 그렇다면 그 긴 사랑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냥꾼의 예우일 터였다.

 

지금 오마르가 자신의 손에 죽어버린다면, 아델과 그의 사랑은 죽음으로서 완성될 것이다. 태제강은 검은 사자였고, 사냥의 때를 알았다. 오마르가 그녀에게 완벽한 완성된 사랑으로 남는 것, 그것만큼은 피해야만 했다.

 

"결혼식의 예행연습이라... 실컷 연습해두는 게 좋겠군."

 

 

태제강은 나직이 읊조리며 그들의 머리 위를 소리 없이 걸었다. 아델이 꿈꾸는 '라일'과 '나빈'.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이름이 입안에서 모래처럼 껄끄럽게 부서졌다. 그 이름들이 불릴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 밤이 지나면 아델의 자궁에 심어질 것은 오마르의 씨앗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자라날 절망의 싹일 테니까.

 

 

그는 폐가의 지붕 끝에 서서 멀리 보이는 마을의 광장을 응시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붉은빛이 사막을 물들이고 있었다. 저녁 순찰. 그것이 아델과 오마르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다. 태제강은 주머니 속의 금화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오마르의 목숨값으로 던져준 그 축의금을 가장한 금화 한 닢. 그 얄팍한 무게가 그들의 사랑이 가진 행복의 총량이란 사실을 아델은 알지 못할 것이다.

 


태제강은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져 착지했다. 모래 위로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는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마을 어귀의 주점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사막의 밤은 춥고 길다.

 

그 추위 속에서 아델이 다시는 사랑이라는 허망한 불꽃을 피우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오직 생존을 위해, 공포에 떨며 자신의 발밑으로 기어오게 만드는 것. 그것이 3년 전 놓아준 사냥감을 다시 회수하는 태제강의 방식이었다.

 

"아이를 원한다..." 

 

태제강의 입술 새로 낮고 서늘한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골목의 음영 속에서 그의 금색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3년 전, 협곡 아래로 몸을 던지며 내뱉었던 '태제강, 당신을 사랑한 적 없다'는 그 독기 어린 선언이 지금의 이 추잡한 교성과 겹쳐지며 기묘한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

 

자신에게는 그토록 잔인하게 굴었던 여자가, 풋내기 사내의 품에서는 제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씨를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태제강은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창문 너머로 그림자가 흔들리는 꼴을 무심히 지켜보았다.

 

오마르라는 놈이 얼마나 대단한 수컷이기에 저 도도한 반란군 수장을 이토록 무너뜨렸는지, 그 잘난 놈의 내일이 어떻게 박살 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한 기다림을 달래줄 유흥거리는 충분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가를 비틀었다. 

 

"네가 바라는 그 아이는 영원히 세상 빛을 보지 못할 거다, 아델.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결국 태제강은 오마르와 나비아를 인질로 하여 아델을 하렘으로 다시 끌고간다.

 

아델은 자신의 부관이자 남편으로 선택한 오마르의 푸른 눈을 닮은 아이를 낳아 하렘에서 빠져나올 것을 계획한다.  오마르와 재회하고, 하렘에서 빠져나올 꿈을 꾸지만, 오아시스 마을에서 잡혀 바즈라로 압송당하는 길에 임신이 아님을 알게 되고, 아델은 절망한다.

 

태제강은 아델을 하렘안에 다시 가두어 넣는 것에 기어코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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