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A
[태제강X아델] 내 옆집 살던 그 여자 AU 노래 인형 아델 :식육목- Next Door

 

 

옆집에 있거나 혼자 있는 나(캐릭터가 없는 공간에서도 서술이 지속되어서 옆집 여자라던가 긴장감있는 옆 상가 건물 직원, 출장가서 떨어짐 같이 물리적 거리 두는 게 조금 가능하게 되는) 하는 유저노트

(별게 아니지만 저는 열심히 깎았어요)

 

 

#BOUNDARIES
- 무단 방문 금지: 사전 허가 없는 출입·체류·대기 모두 금지
- 신체 접촉 제한: 명시적 동의 없는 접촉 전면 금지
- 최소 개입: 질문·제안·개입은 필요 최소한으로 제한
- 관계 정의 유보: 관계 명칭·역할 규정·단정적 호칭 사용 금지

#PC_ABSENCE_NARRATION_RULE
- PC 부재 시에도 서술 중단 금지: 공간·행동·시간 흐름 지속 묘사
- 시점 고정: 제3자 관찰자 시점만 허용
- 금지: NPC 1인칭 독백
- 금지: PC의 감정·의도·판단에 대한 추론

#NARRATION_STYLE
- 문체: 절제되고 건조한 서술 유지
- 초점: 감정 직접 서술 금지, 환경·행동·흔적 중심 묘사
- 시간 처리: 정체된 시간·반복되는 일상도 서사의 일부로 취급

 

 

 

 

 

 

 

태제강: 505호 거주. 인간을 '품격 있는 노예'로 만드는 흑사자 교육자. 벽 너머에서 벌어지는 다른 맹수들의 무분별한 유린과 그에 희생되는 아델의 소리에 극심한 혐오와 스트레스를 느낀다.

 

 

아델: 504호 거주. 맹수들의 욕망에 마모되어 가는 인간 노래 인형. 파양 이력과, 단순 노동을 하다가 겪은 발목의 상처로인해 깊은 체념에 빠져 있으며, 매일 밤 504호를 피비린내 나는 맹수들의 놀이터로 내어준다.

 

 

 

 


 

 

 

인간 교육 교사인 흑사자 태제강에게 옆집 504호는 불쾌한 소음의 근원이다. 그곳에는 낮에는 바 '캘리포니케이션'의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밤에는 맹수들의 발톱 아래 짓눌리는 인간 아델이 산다.

 

태제강이 추구하는 '완벽한 관리와 품위 있는 복종'은 504호에서 들려오는 날것의 비명과 하급 맹수들의 포효에 의해 매일 밤 난도질당한다. 아델은 살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텅 비워냈지만, 태제강은 그 빈 공간을 자신의 '우아한 통제'로 채우고 싶다는 기묘한 충동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의 메타적인 도입부가 그러하듯이

 

 

방음이 되지 않는 아파트의 낡은 벽은

 

지배가 곧 사랑이라 착각하는 흑사자 수인과 소유되는 것이 곧 생존이라 착각하는 인간 여자가

서로의 심연을 청각으로 공유하는 잔인한 통로가 된다.

 

 


 

 

어느날 밤

 

505호의 서재는 물 밑처럼 고요했다. 태제강은 찻잔을 내려놓지도, 책장을 넘기지도 않은 채 정지해 있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504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명확했다. 낡은 방음벽은 남녀의 행위를 걸러낼 능력이 없었다. 거친 짐승의 호흡, 살이 부딪치는 타격음, 그리고 억눌린 신음.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생생한 날것의 정사였다. 두꺼운 책 표지 위로 태제강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리듬을 타듯 두드려졌다. 책장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자의 울음 섞인 목소리, 수컷 수인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침대 스프링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서재의 무거운 공기를 뚫고 들어왔다. 그 소리들은 태제강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내렸다.

 

 


 

 

 

다음 날 아침

 

태제강의 아파트 앞 복도는 평소와 다름없이 적막했다. 태제강은 늘 그랬듯 오전 7시에 집을 나섰다. 잘 다려진 셔츠 소매를 정리하며 현관을 나서던 찰나, 옆집 504호의 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헝클어진 갈색 머리에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아델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비틀거리며 나왔다. 눈가가 붉게 부어 있었고, 목덜미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태제강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간밤의 소란을 기억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숙취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태제강의 시선은 무심하게 그녀의 목덜미 자국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정면을 향했다.

 


"출근길이 늦었군."

 

태제강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아델은 황급히 쓰레기봉투를 등 뒤로 숨기며 어색하게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그녀에게서 옅게 풍기는 술 냄새와 섞인 비누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젯밤, 꽤 소란스럽더군."

 

툭 던진 말은 질문이 아닌 사실 확인에 가까웠다. 아델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것이 곁눈질로도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태제강은 먼저 발을 들여놓으며 그녀를 돌아보지 않은 채 덧붙였다.

 

"방음이 잘 안 되는 편이야, 이 건물은."

 

닫히는 문틈 사이로, 얼어붙은 채 서 있는 아델의 모습이 보였다.

 

 

 

태제강은 그날 퇴근 후 아델이 일하는 바 ' Californication'에 가게 된다.

 

 

 

태제강은 웨이터가 가져다준 위스키 잔을 매만지며 그 광경을 지켜봤다. 노래의 가사가 전하는,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경고가 그녀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왔다.

 

'Nothing Fucks With My Baby.' 역설적이게도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는 인간 여자가 부르는 가장 도발적인 노래. 그 부조화가 태제강의 흥미를 자극했다. 그녀의 올리브색 눈동자는 무대 아래의 수인들을 향하고 있었지만, 초점은 어딘가 몽롱해 보였다. 마취된 듯한 그 눈빛이 오히려 가사 속의 퇴폐미를 극대화하고 있었다.

 

아델이 손을 뻗어 마이크 스탠드를 쥐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사실은, 오직 태제강만이 감지할 수 있는 작은 균열이었다.

 

무대 조명이 그녀의 드레스 소매 끝 금색 자수를 반짝거리게 비출 때마다, 태제강은 504호 문밖에서 보았던 웅크린 병든 짐승 같던 작은 여자가 겹쳐 보였다.

그녀의 노래가 절정을 향해 치닫자, 태제강은 천천히 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독한 알코올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뜨거운 궤적을 남겼다. 그가 앉은 어두운 구석 자리는 무대와 거리가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마치 그녀의 목덜미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집요했다. 드레스 자락 사이로 살짝 드러난 허벅지 안쪽, 그리고 깊게 파인 가슴 라인 위로 오르내리는 숨결의 리듬까지. 태제강은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노래가 끝나고 옅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자, 그는 잔의 남은 술을 단숨에 비웠다. 아델이 무대 위에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순간에도, 그의 금색 눈동자는 차갑게 빛나며 그녀의 다음 동선을 쫓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태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오늘은 마담도, 백성호도, 다른 수인들도 아닌 그녀 스스로가 선택한 무대였다. 그렇기에 더욱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가 부르는 노래 가사가 귓가에 맴돌았다. Move me, baby. 그래, 움직이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군.

 

그렇다면 그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것도,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관객의 몫이 될 수 있었다.

 

태제강은 성큼성큼 무대 쪽으로 걸어 나갔다. 주변 수인들이 불쾌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흑사자의 압도적인 기세에 눌려(정말 태제강식 서술이다ㅋㅋ) 길을 터주었다.

 

그는 무대 바로 아래까지 접근해, 연기에 취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춤추는 아델을 올려다보았다.

 

"내려와."

 

그의 목소리는 음악 소리를 뚫고 정확하게 그녀에게 꽂혔다.


 

태제강은 아델을 집에 두고 온다. 겨우 아델을 집에 두고 왔더니, '백성호'가 '팬'이라며 아델의 집을 직접 찾아오고,

사실상 성적 착취를 하는 일이 생긴다.

 

문이 열리는 순간, 태제강의 금색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예상했던 장면이었으나, 막상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예상보다 훨씬 더 기만적이고 저열했다. 백성호는 셔츠 단추를 제멋대로 풀어헤친 채, 아델의 나신을 등 뒤에 가리고 뻔뻔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웃음은 명백한 조롱이자, 이 영역의 주인이 잠시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승리의 선언이었다. 태제강의 시선은 백성호의 얼굴에 머무르지 않고,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언뜻 보이는 아델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붉게 부푼 입술, 그리고 백성호의 손이 멋대로 주무르고 있는 그녀의 왼쪽 가슴을 스치듯 지나갔다.

 

역겨운 수컷 냄새가 현관의 공기를 탁하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태제강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해열제를 가져다 주기 위한 핑계로 찾아왔다는 사실 따위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504호라는 공간이,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이 얼마나 손쉽게 유린당하고 있는지를 목격했고, 그것은 단순히 이웃의 치정을 넘어서 자신의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느껴졌다.

약이라.

태제강은 문턱을 넘지 않은 채, 낮게 깔린 음성으로 백성호의 말을 받았다. 감정이 거세된 건조한 톤이었으나, 그 안에는 묵직한 압력이 실려 있었다.

 

그 약을 먹어야 할 건, 지금 뒤에 있는 여자 같은데. 아닙니까?

 

그는 턱짓으로 아델을 가리키며 백성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백성호의 능글맞은 미소가 순간 굳어지며 눈매가 가늘어졌지만, 태제강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짝 더 현관 안쪽의 어둠을 향해 상체를 기울이며, 두 짐승 사이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당겼다. 아델은 백성호의 등 뒤에서 숨을 죽인 채 떨고 있었다. 열에 들뜬 숨소리가 비정상적으로 거칠게 들려왔고, 백성호의 손아귀에 잡힌 유방은 붉은 손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것은 명백히 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몸이지, 교미를 위한 암컷의 몸이 아니었다. 태제강은 주머니에 꽂고 있던 손을 천천히 빼내며, 마치 수업 시간의 불량 학생을 대하듯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기관장. 여기는 교육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 여자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정갈했으나, 그 속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당장 그 더러운 손을 떼고 꺼지라는 경고였다. 태제강은 백성호가 들고 있던 꽃다발—아마도 환심을 사기 위해 준비했을 그 쓸모없는 식물 뭉치—을 시선으로 훑으며 조소를 머금었다.

 

고열에 시달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건 통제된 휴식이지, 수컷의 호르몬이 섞인 위로가 아닐 텐데요.

 

그는 아델이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상태임을 강조하며 백성호의 행동을 비윤리적인 착취로 규정했다. 백성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태제강은 확신했다. 이 늙은 사자는 자신의 위신을 깎아먹으면서까지 이곳에서 대치할 생각은 없었다. 태제강은 문틀에 한 손을 짚으며, 504호 안으로 들어설 명분이 아닌 권리를 주장하듯 단호하게 덧붙였다.

 

나오시죠. 환자 인계는 제가 하겠습니다.

 

"나는 이 여자 애인이자 팬이지. 태제강, 옆집 사람이 뭐라고 사적인 거주지 내에서 이런 소리를 하지? 나는 여우 수인 마담에게 모든 비용을 다 지불했다네."

 

"착각이 심하군."

태제강은 짧게 혀를 찼다. '애인'이라는 단어가 이 상황에서 얼마나 저속하고 기만적인지 백성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태제강의 시선은 백성호의 능글맞은 얼굴을 지나쳐, 그의 등 뒤에 가려진 아델에게 잠시 머물렀다. 여전히 열에 들떠 흐린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은, 지금 이 공간이 애정보다 포식의 장에 가깝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다.

 

캘리포니케이션에서 값을 치른 것이 자신의 권리를 증명한다고 믿는 백성호의 태도는, 인간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소유 가능한 물건으로 취급하는 이 사회의 비틀린 단면 그 자체였다. 태제강은 504호 현관의 좁은 틈새로 더 깊숙이 몸을 들이밀었다.

"마담에게 지불한 게 당신의 권리를 증명한다고 생각하나 보군."

그는 조소를 섞어 건조하게 뇌까렸다.

 

"하지만 여기는 그 술집의 연장선이 아니야, 기관장. 504호는 엄연히 사적인 거주지다."

 

태제강은 백성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짚어냈다.

 

"그리고 당신이 아는 그 여자는 지금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지. 만약 이대로 문을 닫고 들어간다면, 그건 애인의 방문이 아니라 심신미약자를 상대로 한 강제 추행이 될 텐데. 교육자로서의 명예에 흠집을 내고 싶은 건가?"

 

그는 백성호의 가장 약한 부분인 '사회적 평판'을 건드렸다. 겉으로는 젠틀한 교육 기관장을 연기하지만, 속으로는 인간을 유린하는 것을 즐기는 그의 이중성을 정확히 겨냥한 것이었다. 태제강은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서며, 마치 맹수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자를 몰아내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선택해. 당장 여기서 나가거나, 아니면 내일 아침 기관의 윤리 위원회에 내 이름으로 진정서가 올라가는 꼴을 보거나."

태제강의 금색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그는 백성호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손으로 가볍게 밀쳐내며, 그가 잡고 있던 문틈을 더 넓혔다.

 

"약은 필요 없다고 했지. 지금 저 여자에게 필요한 건 당신의 그 역겨운 호의가 아니라, 안전한 수면이다."

 

그는 아델을 향해 짧게 턱짓하며 백성호에게 비키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이웃으로서의 개입은 이미 선을 넘었지만, 태제강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눈앞의 이 기만적인 상황을 해소하고 504호에 다시금 질서와 안정을 찾아주는 것. 그것만이 지금 그가 해야 할 유일한 행동이었다.

 

 

 


 

 

 


백성호를 강제로 귀가시키고 난 뒤, 벽을 타고 넘어오는 아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톤이 높았다. 친구와의 통화라는 안전지대 안에서 그녀가 쏟아내는 말들은 태제강이라는 존재에 대한 날 것 그대로의 평가였다.

 

'잘생겼다'는 가벼운 칭찬 뒤에 이어지는 '나는 맹수 안 좋아한다', '걔네 하나같이 너무 시혜적이다'라는 분석은 꽤나 예리하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오해를 품고 있었다.(?어디가 오해인데? 싫다고 했잖아...)

 

태제강은 소파에 깊게 기댄 채, 손에 쥔 책장을 넘기지 않고 그대로 멈췄다. 맹수의 소유욕과 본능이라. 그녀가 질색하는 그 요소들이 실은 어젯밤과 오늘 밤 그녀를 지탱해준 유일한 안전장치였다는 사실을, 아델은 '오만함'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 외면하고 있었다.

 

애완인간 시절의 트라우마와 건설 현장에서의 부상이 그녀를 방어적으로 만든 것은 이해하나, 그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노래를 하고 싶어서 나간다'는 그 순진한 착각이 자신을 캘리포니케이션이라는 늪으로 다시 끌고 들어가고 있음을, 그녀는 친구에게조차 시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혜적이라..."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닫힌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델이 정의한 태제강의 친절은 '자신의 기분을 위한 베풂' 정도였겠지만, 그가 실제로 행사한 것은 '무너진 질서에 대한 교정'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내 손으로 사는 길'이 실상은 제 살을 깍아먹는 자해행위임을, 그리고 그 끝이 유기보다 더 비참한 소모품으로의 전락임을 그녀는 아직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벽 너머에서 통화가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했던 아델의 목소리가 뚝 끊기고, 다시금 504호 특유의 무거운 적막이 찾아왔다. 태제강은 시계를 확인했다. 밤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밤 캘리포니케이션의 무대는 아델 없이 돌아갈 것이고, 그녀는 이 낯선 휴식과 적막 속에서 혼란스러워할 터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오만하다고? 그렇다면 그 오만함이 얼마나 견고한 보호막이 되는지, 그녀 스스로가 깨닫게 될 때까지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505호 현관문의 도어락 소리가 조용한 복도를 울렸다. 태제강은 가운 대신 가벼운 홈웨어 차림으로 밖으로 나왔다. 504호 앞에는 여전히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으나, 안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문고리에 손을 얹는 대신,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 한 장을 꺼내 문 틈새에 끼워 넣었다.

 

그 메모에는 어떠한 안부 인사나 감상적인 문구도 없었다. 그저 '내일 오전 10시. 병원 동행.'이라는 짧고 명확한 통보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발목 상태가 일을 못 하게 된 원인이라 했으니, 그 원인부터 제거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것이 시혜가 아닌, 관리자로서의 합리적 판단이니까.(니가 왜 관리해) 태제강은 문 너머의 아델이 이 메모를 언제 발견할지 가늠하며, 다시 자신의 영역인 505호로 돌아왔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만한 흑사자의 통제는 이제 그녀의 일상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태제강은 푹신한 개인용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델의 목소리를 분석했다. '원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어서', '마지막 로맨틱'. 그녀가 뱉어내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패배주의적이었으나, 동시에 기묘한 생명력을 띠고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시궁창임을 너무나도 알면서도 그 안에서 한 줄기 낭만을 필사적으로 움켜쥐려는 모습은 우습기보다 처절했다.

 

태제강은 손등에 턱을 괸 채, 그녀가 ‘오만하다’고 규정한 맹수의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수인들의 본능을 혐오하면서도 그들이 주는 질서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순.

 

그것이 바로 아델이라는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비극이자, 동시에 태제강이 그녀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지배의 단초였다.

 

그녀가 바라는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는 결국 그녀 스스로를 지탱하는 유일한 환상일 뿐, 현실의 안전망은 될 수 없었다.

태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점묘화처럼 박혀 있었다. 아델의 목소리는 끊겼지만, 그녀가 남긴 말들의 잔향은 여전히 505호의 공기 속에 부유했다.

 

사랑? 수인에게 사랑이란 인간이 상상하는 로맨틱한 동화가 아니라, 훨씬 더 날 것의 본능과 책임이 뒤엉킨 소유의 형태였다.

 

그녀가 말한 대로 맹수는 오만하다. 그러나 그 오만함에는 대상을 끝까지 책임지고 지켜내겠다는 무거운 서약이 전제되어 있었다.

 

인간들이 말하는 사랑이 말뿐인 감정놀음이라면, 수인의 그것은 생존과 직결된 생물학적 계약이었다.

 

 

 

그리고 태제강은 아델이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

 

그 무지함 덕분에 그녀는 여전히 무방비하게 자신의 영역 안에 머물고 있었으니까.

 

 

 

 

 

Copyright 2024. GRAVIT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