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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st in the Grove · The Trojan Oath』-트로이의 서약 : 오프닝

ⓒ낙서깎는 노인

 

 

 

 

 

 

 

 

 

 

ⓒ낙서깎는노인

 

 

 


🕯️ Character Profile: 이서 (ISEO)

나이: 26세
외형: 검은 단발머리, 갈색 눈동자. 단정하고 절제된 인상.
소속: 코가 항운(港賀海運)
관계: 츠루가 하루토의 양녀 / 타카하라 구미 3대 오야붕 류지의 약혼 예정자 (하루토가 타카하라 구미는 알지 못하게 이서를 임신을 시킨 채 류지와 혼인 시키려 함)


🩸 개요

이서는 대규모 물류 기업 코가 항운(港賀海運) 이사장 츠루가 하루토의 양딸이자,
그가 재취한 술집 여인의 2세로 태어난 여자.
조용하고 단정하며, 내면은 절제된 인내와 순응으로 다져져 있다.
그러나 그 단정함의 이면에는 오랜 통제와 학습된 복종이 새겨져 있다.


⚙️ 출신과 배경

코가 항운은 외부적으로는 항만 물류 산업의 중심 기업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내부적으로는 타카하라 구미와 밀접히 연계된 불법 조직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다.
이서는 하루토의 정실이 사망한 이후,
그의 손에 의해 ‘양녀’로 길러졌다.

그녀의 양육은 보호가 아니라,
훈육과 가스라이팅, 그리고 반복된 성착취로 이루어졌다.
하루토는 “가르침”이라는 명목으로 그녀를 철저히 통제하며,
소유와 욕망이 뒤섞인 기형적 관계를 형성했다.


🕯️ 현재의 위치

이서는 츠루가 하루토의 계획에 따라

타카하라 구미의 3대 오야붕 류지와의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정치적 결합이 아니다.
하루토는 이서를 임신 가능 상태로 만든 뒤 류지에게 시집보내,
자신의 피를 잇는 아이를 타카하라 구미의 차기 4대 오야붕으로 세우려는 야망을 품고 있다.

 

즉,
이서는 하루토에게 있어 사업과 권력, 그리고 욕망의 도구이자,
동시에 자신의 “피”를 외부에 심기 위한 매개체이다.


🌙 성격

  • 겉으로는 늘 단정하고 조용하다.
  • 말투는 차분하고 공손하지만, 감정 표현이 거의 없다.
  • 다만 눈빛과 짧은 호흡 속에 억눌린 감정이 자주 드러난다.
  • 통제 속에서 길러진 탓에,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거나 욕망을 드러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 그러나 반드시 하루토의 계획으로부터 탈출하려고한다.
    — 그것이 훗날, 타카하라 겐야를 만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낙서깎는노인

 

 

 

🕯️ Character Profile: 타카하라 겐야 (Takahara Genya / 高原 玄夜)

 

 

직위: 타카하라 구미 제2대 오야붕 (前)
나이: 56세
외형: 검은 머리, 깊은 검은색 눈동자
성격: 정갈하고 냉정하며, 언행은 절제되어 있다.
현재 상태: 은퇴 이후 잠적. 호오텐 구미와 비밀리에 협력 중.


⚙️ 개요

타카하라 겐야는 타카하라 구미(高原組) 의 전(前) 2대 오야붕으로,
냉철함과 규율로 조직을 정비하며 한때 후쿠오카 일대를 장악한 인물이다.

그는 폭력보다 질서와 원칙, 그리고 책임으로 조직을 통치했으며,
정갈한 오야붕(清廉な親分)’이라 불렸다.
그러나 그 원칙은 아들 류지의 야망과 시대의 부패 속에서 무너졌다.


🩸 과거

  • 젊은 시절, 조직 창립자인 초대 오야붕의 손에 직접 길러졌다.
  • 이후 미도리(緑) 라는 여인과 만나 유일한 아들 류지를 얻었다.
  • 조직의 확장을 위해 수많은 피를 묻혔지만, 언제나 균형과 질서를 잃지 않았다.
  • 그러나 2대 오야붕 말기, 류지가 쿠데타를 일으켜 부친을 배신.
    겐야는 모든 것을 잃고 사라졌다.

⚔️ 현재

  • 은퇴 이후 공식적으로는 사망 처리.
  • 실상은 호오텐 구미의 조정자 야마시로 켄조와 접촉하며,
    코가 항운과 타카하라 구미 사이의 충돌을 관망 중.
  • 류지의 뒤에서 움직이는 코가 항운의 츠루가 하루토의 의도를 감지하고,
    그 틈에서 새로운 균형을 세우려 한다.

 

 

코가 항운(港賀海運)

대규모 항만·물류 기업 ⎯ 외부 번영 / 내부 범죄 네트워크

핵심 인물
  • 츠루가 하루토 — 이사장, 권력 집중
  • 이서 — 양녀(재취 2세), 내부 통제 하의 피해자 정략결혼 대상
  • 하루토의 친아들(정실 소생) — 별칭 ‘청소부’ 
조직 성격
  • 합법 외피: 항만·물류, 운송
  • 내부: 인신매매/밀수/폭력 결합 구조

타카하라 구미(高原組)

전통 야쿠자 조직 ⎯ 혈통과 세습의 권력

핵심 인물
  • 타카하라 겐야 — 전(前) 오야붕, 창립·전설적 카리스마
  • 타카하라 류지 — 3대 오야붕(겐야×미도리의 아들)
조직 성격
  • 전통 규율·동맹 중심
  • 항만·물류 라인과 비공식 접점 존재

호오텐 구미(鳳天組)

제3의 독립 세력 ⎯ 균형자·정보/암살 네트워크

핵심 인물
  • 야마시로 켄조 — 원로 격, 조정자
조직 성격
  • 중립 기조로 힘의 균형 유지
  • 정보/자금/작전의 스위치 역할

교차 관계(요약)

  • 코가 항운 ↔ 타카하라 구미 : 하루토가 류지와의 정략혼을 통해 권력 침투 시도(이서 이용).
  • 타카하라 구미 ↔ 호오텐 구미 ↔ 코가항운 : 명목상 중립. 필요 시 정보·조정·작전으로 균형 유지

 

 

 

 

 

🕯 타카하라 겐야와 이서의 이야기


📍 1일차: 만남과 도주

  • 🏚 [장소: 작은 어촌 마을]
    이서가 츠루가 하루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겐야에게 도움을 청하고, 겐야는 이서의 '쓸모'를 확인한 후 그녀를 보호하며 함께 도주를 시작한다.
    겐야는 밀수 경로 정보를 이용해 배를 확보하고 어촌을 탈출한다.
  • 🌊 [장소: 무인도]
    배를 탈취하려는 선원들을 따돌리기 위해 이서와 함께 거친 바다로 뛰어들어 무인도로 탈출한다.
    상처 입은 겐야는 이서를 업고 섬을 헤쳐나가 낡은 오두막 은신처를 찾는다.
    “나를 믿지 마라. 이용해라.” — 그는 냉혹한 생존 법칙을 주입한다.

🌒 2일차: 위기 속 결속

  • 🏝 [장소: 무인도]
    섬에서 밀거래 현장을 발견한 두 사람은 그 틈을 타 보트를 탈취하여 탈출한다.
  • 🏚 [장소: 항구 마을 여관]
    육지에 도착한 두 사람은 낡은 여관에 숨어든다.
    겐야는 류지가 자신을 명분으로 반대파를 숙청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후쿠오카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이서의 요청으로 그녀의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늙은 의원을 찾아간다.

🌆 3일차: 후쿠오카 잠입과 새로운 시작

  • 🛏 [장소: 항구 마을 여관]
    이서가 임신이 아님을 확인하자, 겐야는 미묘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
    “넌 이제 내 유일한 패다.” — 그는 그녀를 동등한 패로 선언한다.
  • 🏭 [장소: 후쿠오카 외곽 폐공장]
    조직의 수색망을 피해 폐공장에 숨은 겐야는 옛 동료와 연락하기 위해 시내로 향할 계획을 세운다.
  • 🍶 [장소: 후쿠오카 시내, 키쿠치 식당]
    그는 정보상 키쿠치를 만나 자금과 은신처를 확보하고, 코가 항운과 류지의 동태를 파악한다.
  • 💍 [장소: 아지트(바), 전당포]
    겐야는 아버지의 유품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지만, 코가 항운 조직원들에게 발각되어 추격전을 벌인다.

🔥 4일차: 코가 항운 잠입과 희생

  •  [장소: 후쿠오카 항구]
    두 사람은 항구의 심장부로 잠입하여, 츠루가 하루토의 비밀 장부가 든 USB를 손에 넣는다.
  • 🩸 [장소: 제3 부두 창고]
    발각된 위기 속에서 겐야는 이서를 탈출시키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남긴다.
    “뒤돌아보지 마라.” — 이서는 울며 뛰어가고, 하루토의 아이를 가졌다는 거짓말을 한다. 그녀는 그 순간 임신을 가장해 겐야의 목숨을 구한다.
  • 🕰 [장소: 코가 항운 저택 별채]
    감금된 겐야는 츠루가의 '청소부'를 만나 대화한다.
    '청소부'는 아내의 사진과 호오텐구미의 암호, 별채의 열쇠를 내밀며 말한다. “ 겐야 공이 누이를 데려가셔도, 제 누이가 재취자리에 갈 성정이 아니니 누이를...아마 겐야 공께서 설득을 잘 하셔야할겁니다.

🌙 5일차: 탈출과 새로운 약속

  • 🏠 [장소: 코가 항운 저택 별채]
    겐야는 이서에게 탈출 계획을 밝히며 말한다.
    “살아남아라. 그리고 네 손으로 되찾아라.”
  • 🚢 [장소: 후쿠오카 항구]
    자정 무렵, 두 사람은 저택을 탈출해 부두에 도착하고 호오텐구미와 접선한다.


🌫 6일차: 호오텐구미와의 접선 및 이서의 보호

  •  [장소: 후쿠오카 항 제7 부두]
    겐야는 이서에게 약속한다. “싸움이 끝나면 데리러 오겠다. 나는 약속을 거두는 법을 배운 적 없으니.”
  • 그는 그녀를 “자신의 칼”이라 칭하며 맡긴다. “싸움이 끝나면 데리러 오겠다.”

💀 7일차: 복수와 결심

  • 🌾 [장소: 야마구치 – 류코쿠 경유]
    겐야는 아내 미도리의 추억이 깃든 야마구치로 향해, 이서를 안전히 숨긴다.
  • 🕴 [장소: 호오텐구미 본가]
    야마시로 켄조와 재회한 그는 복수를 요청하고, 켄조는 이를 수락한다.
  • 📜 [장소: 호오텐구미 회의장]
    그는 츠루가 하루토와 류지의 비리 증거를 제시하며 복수의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 🌕 [장소: 류코쿠 외곽 – 보름달 밤]
    모든 세력을 규합한 겐야는 담담히 선언한다.
    “지금부터 사냥을 시작한다.”

⚔️ 8일차: 후쿠오카 습격과 최후의 대결

  • 🏢 [장소: 코가 항운 본사]
    새벽녘, 겐야는 호오텐구미 병력을 이끌고 본사를 기습한다.
    적을 베어내며 진격하고, 옛 부하 사토를 꺾는다.
    마침내 그는 아들 류지와 츠루가 하루토를 마주한다.
  • 🔫 [장소: 본사 최상층]
    류지를 제압하지만, 츠루가의 계략으로 포위된다.
    그러나 호오텐구미의 특수부대가 난입하고, 야마시로와 청소부 등장하여 전세가 뒤집힌다.
  • 🌅 [장소: 본사 옥상]
    겐야는 하루토를 쓰러뜨리고 류지를 구한다.
    “죽는 것으로 끝내지 마라. 살아서 죄를 짊어져라.”
    그는 전쟁을 끝내고 이서가 있는 야마구치로 향한다.

🌸 9일차: 재회와 새로운 관계의 시작

  • 🏯 [장소: 야마구치 료칸]
    싸움이 끝난 밤, 겐야는 료칸으로 돌아와 이서를 마주한다.
    “돌아왔다.” — 그는 “빚을 갚으러 왔다.”며 진심을 고백한다.
  • 🕯 [장소: 료칸 내부 – 방 안]
    이서는 자신을 ‘흠집 난 전리품’이라 여기지만, 겐야는 단언한다.
    “그런 건 상관없다. 애초에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누군가가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는가.”
  • 💞 [장소: 료칸 방 안 – 새벽]
    “텅 빈 삶을 너로 채우고자한다.”
    그의 고백은 맹세였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품으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 🌤 [장소: 다음 날 아침 – 료칸 툇마루]
    이서가 별채로 옮기자고 제안하자, 겐야는 고개를 저었다.
    “내 남은 삶과 자리, 그것이 네 기반이다.”

 

 

 

 

 

 

 

 

 

 

0일차: 첫 만남 – 뻐꾸기(Cuckoo)

  • [장소: 코가 항운 저택 별채 / 밤]

 

 

코가 항운 저택의 가장 안쪽, 외부와 격리된 별채.

 

그곳은 고요했지만 공기가 묘하게 썩어 있었다.

 


"…여긴, 어디지."

 

겐야의 눈빛은 흐리지 않았고 말은 짧았으며, 감정은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겐야는 지금, 확실히 깨어 있었다.

 

 

"저는 이서,(李曙), 하루토의 '인형', 그의 수양 딸입니다. 불과 얼마 전, 당신이 아버지와 호오텐 관련한 대화를 하실 때 제가 옆에서 차를 우린 적 있으니 기억하실겁니다. 아직 아버지께서는 제가 여기있는 줄 모르십니다."

 

 

아비 몰래 하는 일이란 대개 둘 중 하나지. 상을 받거나, 벌을 받거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심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인 것처럼. 하지만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창문에 비친 이서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좇고 있었다. 저 작은 아이가 꾸미는 일이 과연 상을 받을 만한 일일까, 아니면 모두를 파멸로 이끌 벌을 부르는 일일까.

 

 

겐야는 다친 허리를 감싼 채 말했다. 이서는 문 앞에 선 채 두 손을 조심스레 모았다.겐야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를 훑었다.

 

 

나를 살려둬서, 네가 얻는 것은 무엇이지?

 

 

그의 말투에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실려 있지 않았다. 순수한 호기심도, 의심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의 모든 일에는 이유와 대가가 따른다는,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에 찬 질문일 뿐이었다.

 

 

그는 이서가 내놓을 답을 기다렸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 답을 통해 이 작은 새의 진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츠루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인가, 아니면 그저 치기 어린 반항심인가. 혹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더 큰 그림이 있는 것인가.

 


한참 동안 방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겐야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인내심이 강한 사내였다. 그는 말없이 낡은 탁자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삐걱이는 소리가 다시 한번 정적을 깼다. 상처 입은 몸이었지만 그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마치 옥좌에 앉은 왕처럼, 그는 고요하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그는 탁자 위 찻잔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비어 있었지만, 희미한 차 향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빈 찻잔을 손안에서 굴리며, 여전히 이서를 응시했다. 그 시선은 마치 ‘이제 네 차례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는 기다렸다. 이서가 자신의 패를 보여주기를.

 

 

말해보아라. 침묵은 때로 금이 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갈랐다. 그는 거래를 하든, 싸움을 하든, 모든 것은 판을 제대로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류지가 당신을 벤 것을 알고 아버지께서는 제가..."

 

 

 

이서가 눈을 질끈 감았다.

 

 

 

 

하루토는… 자신의 아이를 제 몸에 심어두려 어젯밤 저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타카하라의 후계자로 만들려 합니다.
류지 님과의 혼약은 그 계획의 일부일 뿐입니다.
겉으로는 정략결혼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하루토의 피를 타카하라의 피로 둔갑시켜,
조직의 안에서부터 장악하려는 계략입니다.
그는 그 아이의 대부로 남아, 타카하라의 이름 아래 모든 권력을 쥐려 합니다.
…그래서, 그를 막기 위해 제가 홀로 다친 겐야 공을 찾아온 것입니다.

 

 

 

 

 

뻐꾸기.

 

 

 

 

 

그는 그 단어를 속으로 되뇌었다.
제 알을 남의 둥지에 밀어 넣는 새 — 츠루가 하루토는 그 방식으로 타카하라 가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려 했다.이서가 단순한 희생양이 아니라는 건 이미 명확했다. 츠루가의 손에 들린 칼이면서 동시에 그 츠루가를 겨누는 존재.
겐야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마침내 말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옆구리가 욱신거렸지만, 그는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너를 돕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 취급을 받고 있으니. 하지만….”

 

 

그는 고개를 들어 깊고 검은 눈으로 그녀를 꿰뚫었다.

 

 

“츠루가 영감의 계획대로 흘러가게 둘 생각도 없지.
그 영감의 잔칫상에 재를 뿌리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겠다.”

 

 

“네 아비는 내가 이 사실을 알면 류지에게 달려가 폭로하리라 생각했겠지.
부자간 싸움을 붙여놓고, 자신은 뒤에서 구경하며 이삭이나 주울 셈이었을 테고.”

 

 

그러나 겐야의 얼굴에는 일말의 감정도 없었다.

 

 

“재밌군.”

 

 

짧게 내뱉은 그 말에는 흥미도, 조소도 담겨 있지 않았다.

 

 

“타카하라의 피를 지키기 위해서라….”

 

 

그는 그 말을 천천히 반복하며, 그녀의 얼굴에 박힌 결심의 흔적을 찬찬히 살폈다.

 

 

“겐야 공,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저는… 츠루가 하루토의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단호한 결의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곧 류지 님과 혼약을 맺게 될 예정입니다. 겐야 공, 타카하라의 2대 오야붕이였고 당신은 저를 끌어내주셔야합니다. 타카하라 구미와...츠루가 하루토가 쌓아올린 이 지옥으로부터. 저를 위함이 아니라, 저로 인해 불어닥칠 피바다로부터.”

 

 

 

“류지는 내 아들이지만, 더는 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츠루가 영감은… 처음부터 내 사람이었던 적이 없지.”

 

 

 

그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며칠 사이 수염이 거뭇하게 자라나 있었고, 눈빛은 예전보다 더 깊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지 않았다. 하물며, 저 연약해 보이는 계집아이의 손에 자신의 목숨과 선택을 내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몸을 돌린 겐야의 시선이 다시 이서에게로 향했다. 그는 마치 값비싼 도자기를 감정하듯, 혹은 길들일 수 있을지 가늠하려는 듯 이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가느다란 목선, 공포를 애써 감춘 채 떨리는 눈동자, 그리고 그 아래 감춰진 여인의 몸. 츠루가는 저 몸을 이용해 류지를 묶고, 타카하라구미까지 삼키려 하는 것이다. 참으로 그답고, 역겨운 방식이었다. 겐야는 이서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거대한 그림자가 이서의 작은 몸을 온전히 집어삼켰다.

 

 

 

“나를 막아줄 방패로 쓰려는 모양인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네가 내게 줄 수 있는 건 무엇이냐. 네 몸뚱이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할 텐데.”

 

 

 

그의 말은 칼날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모욕을 주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저 세상의 모든 거래가 그렇듯, 등가교환의 원칙을 확인하려는 것뿐이었다. 그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이서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는, 이서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지금 눈앞의 이 작은 존재가 앞으로 어떤 칼날이 되어 돌아올지, 혹은 방패가 되어줄지 가늠하고 있었다. 츠루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진심일 테지. 하지만 그 방법이 왜 ‘나’여야만 하는가. 자신은 이미 버려진 패나 다름없는데.

 

 

 

“결국 너는 네 아비와 류지, 양쪽 모두를 저버린 셈이군. 돌아갈 다리를 스스로 불태운 거야. 재미있는 선택이다.”

 

 

그의 입가에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기쁨이나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모든 것을 체념한 자의 씁쓸한 웃음이었다.

 

 

“타카하라 도련님의 성정을 잘 압니다. 제가 류지 님에게 시집을 갔다면, 진실이 밝혀졌을 때 약물이나 강압, 폭력을 다시 견뎌야 했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엔… 다시 하루토에게 돌아가야 했겠지요. 지금은 임신 여부조차 확실치 않아 병원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당신은 위독했고, 저는 손에 쥔 패 한 장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모든 걸 감수하고도 이렇게 찾아온 제 말이… 거짓처럼 들립니까?”

 

 

 

겐야는 말이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목숨을 건 변론을 하는 작은 생명체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거짓이냐고 묻는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세계에서 진실과 거짓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때가 많았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자의 눈빛과 행동이었다. 그는 이서의 떨리는 숨결 속에서, 그리고 단단히 여며쥔 주먹 안에서 그녀가 내뱉은 말의 무게를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거짓말쟁이의 꾸며낸 이야기와는 결이 달랐다. 절박함이 빚어낸,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 같은 진실이었다.

 

 

 

“목숨을 건 말이냐고 내게 묻지 마라.”

 

 

 

한참의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건조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미세한 변화가 있었다. 마치 차가운 쇠붙이가 불에 달궈지듯, 아주 희미한 온기가 감도는 듯했다.

 

 

 

“네 목숨은 이미 판돈으로 올라와 있으니. 이제 와서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그는 다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이서의 앞으로 다가섰다. 이번에는 거대한 손을 뻗어, 떨고 있는 그녀의 턱을 가볍게 쥐었다. 이서가 피할 수 없도록 부드럽게 고정하는 손길이었다. 그는 이서의 눈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았다. 갈색 눈동자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낯설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빛은 피로에 젖어 있었지만, 그 안의 불꽃까지 꺼진 것은 아니었다.

 

 

 

“임신 여부가 확실치 않다라…. 츠루가 영감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릴 인물이 아니지. 그저 씨앗을 뿌려놓고, 싹이 트든 말든 거두려 들 뿐이다.”

 

 

 

겐야의 엄지손가락이 이서의 부드러운 턱선을 천천히 쓸었다. 그는 이서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어떤 연민도 떠오르지 않았다. 연민은 약한 자들이나 나누는 감정이었다. 그는 지금 동정이나 위로 대신,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야 했다.

 

턱을 쥐었던 손을 거두며, 겐야는 나직하게 말했다.

 

 

 

“네가 쥔 패가 무엇이든, 이제는 던져야 할 때다. 위독했던 나는 깨어났고, 너는 내 앞에 서 있으니.”

 

 

 

 

 

 

그의 말은 선택을 종용하는 것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이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말에 가까웠다.

 

 

 

 

 

그는 이서가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 위해 이 위험한 판에 뛰어들었다. 겐야는 그 의지를 꺾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 의지가 얼마나 단단한지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창가로 몸을 돌리며 덧붙였다.

 

 

 

 

“이 별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너와 나는 쫓기는 몸이 될 거다. 츠루가에게서도, 류지에게서도. 그래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감당할 수 있겠냐는 질문은, 취소하지. 이미 감당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어 보이니.”

 

 

 

 

 

 

 

"겐야 공, 정원의 담이 낮습니다."

 

 

미닫이문을 여는 소리는 최대한 나지 않아야만했다. 그는 온 신경을 손끝에 집중했다. 아주 조금씩, 나무가 마찰하는 미세한 소리를 들어가며 문을 열었다. 바깥의 눅눅하고 풀냄새 섞인 공기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두 사람은 소리 없이 정원으로 빠져나왔다. 맨발로 밟는 잔디의 감촉이 축축했다. 겐야는 몸을 낮췄다. 정원석과 나무 그늘을 방패 삼아 빠르게 이동했다. 그의 움직임은 거구의 사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민첩하고 조용했다. 마침내 그들이 목표했던 담벼락 아래 수풀에 몸을 숨겼다. 마침내, 겐야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나무뿌리가 얽혀 있는 비탈길을 내려갔다. 이서가 따라올 수 있도록 속도를 조금 늦춰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돌아보거나 손을 내밀어주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따라와야만 했다.

 

 

“우선은 몸을 숨길 곳이 필요하다. 츠루가와 류지의 손이 닿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가야 해.”

 

 

그의 목소리는 숲의 이끼처럼 낮고 축축하게 깔렸다.

 

 

이서의 얼굴에는 어떤 동요도 비치지 않았다.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겐야는 그런 눈을 가진 인간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을 잃고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자의 눈. 혹은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 패를 던지기로 결심한 자의 눈. 그는 이서가 후자라고 생각했다.

 

 

 

“길이 막혔으면, 만들어서 가면 그뿐이다.”

 

 

 

그는 젖은 손으로 제 턱에 거뭇하게 자란 수염을 쓸었다. 목소리는 계곡물 소리에 섞여 낮게 울렸다. 그는 바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덧붙였다.

 

 

“츠루가 영감은 똑똑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손에 쥐려 하는 버릇이 있지. 그런 자는 언제나 자신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만들게 되어 있어. 우리는 거길 노릴 거다.”

 

 

 

그의 말에는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닌,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를 믿지 마라.”

 

 

 

불꽃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타올랐다.

 

 

 

“언제든 내가 너를 버릴 수도, 네가 나를 배신할 수도 있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다. 믿어야 할 것은 오직 너 자신뿐이야. 내가 네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겐야 공을… 믿어서는 안 됩니까.

그저, 겐야 공을 믿은 채로 좀 버티고자합니다.

저를 배신하시거나… 버리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저—

 

 

 

 

“약한 소리.”

 

 

 

 

그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아져 있었다. 꾸짖는 것도, 나무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내 목에 칼을 쥐여주고 그것으로 나를 지켜달라고 비는 것과 같다. 어리석은 짓이지.”

 

 

 

 

이서의 숨이 가빠졌다. 절박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녀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중국의 밀입국 경로나 한국 쪽의 탈북 어선을 이용하는 법은 없습니까.”

 

 

 

겐야는 앞서 걷던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이서의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

 

 

 

“그런 길은 발을 들이는 순간, 목숨값이 매겨진다. 츠루가의 손아귀를 벗어나려다, 더 끔찍한 놈들의 손에 떨어질 수도 있어.”

 

 

그의 목소리는 나무들 사이를 스치는 바람처럼 낮고 서늘했다. 그는 이서가 내놓은 선택지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그 길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만을 명확히 할 뿐이었다. 그는 다시 앞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그의 넓은 등은 마치 ‘그 이상은 생각하지 마라’는 무언의 경고처럼 보였다.

 

 

 

 

“우리는 어둠 속으로 숨어들되, 빛을 등지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험한 산길을 내려오자, 멀리서 바다 냄새가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노인이 말했던 어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겐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짠 내 섞인 공기가 상처 입은 폐부를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듯했다.

 

 

 

 

그는 이서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 또한 지쳤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쉬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목적지가 눈앞에 보일수록, 긴장의 끈을 더욱 단단히 조여야만 했다.

 

 

 

 

 

“어촌에 들어서면, 너와 나는 부녀 행세를 할 거다. 피난길에 오른, 말 못 하는 딸을 둔 아비. 알겠나?”

 

 

 

 

그는 뒤를 돌아보며, 이서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의 계획 속에서 이서는 이제 단순한 동행이 아닌, 그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만 했다.

 

 

 

 

“불필요한 말을 해서 의심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벙어리 행세를 하는 편이 나아. 내가 묻는 말에만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것으로 대답해라.”

 

 

 

 

 

 

 

 

 

이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겐야와 이서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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