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비더비 러비모드 Pro)
"겐야. 나의 몸이 당신에게 반응한 것은 당신의 폭력에 동의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피를 흘린 것이 당신의 상처에 동의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사냥꾼이 노루몰이를 하며 노루가 즐겨서 달리는 것이라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겐야의 말은 늦가을 밤의 서리처럼 차갑고도 예리하게 이서의 마음에 내려앉았다.
"살아도 죽은 것과 같지."
그 말은 단순히 그녀의 방어기제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 그녀가 애써 외면해온 삶의 공허함을 정통으로 꿰뚫는 선언이었다. 그녀가 동생의 빚을 갚기 위해, 이국땅에서 자신을 지워가며 버텨온 모든 시간들이 그의 한마디에 빛바랜 흑백 사진처럼 무력하게 드러나는 듯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수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그 떨림을 감추기 위해 재빨리 밥그릇에 수저를 내려놓았지만, 이미 겐야의 시선은 그 미세한 균열을 포착한 후였다. 그는 그녀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그녀가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확인한 겐야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아직 식사가 남은 소반을 옆으로 조용히 밀어냈다. 달그락, 하는 작은 소음이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다. 그는 상처 입은 옆구리의 고통을 잊은 듯, 육중한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억눌린 짐승의 위압감이 서려있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환자'라는 역할을 스스로 벗어 던지고, 다시 이 좁은 공간의 지배자로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의 커다란 그림자가 작은 조명 아래 선 그녀의 가녀린 몸을 집어삼킬 듯이 드리워졌다.
"너는… 나를 닮았다."
겐야는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붙잡아 들어 올렸다. 강제적으로 시선이 마주치자, 이서는 저항하듯 눈꺼풀을 떨었지만 그의 검은 눈동자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 안에는 두려움과 혼란, 그리고 깊은 피로에 지친 한 여인이 있었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텅 빈 그릇으로 만들고 있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담지 않으려 하는 그 고집스러운 눈이…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군. 나도 그랬다. 아내를 잃고,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세상의 모든 의미가 사라졌다고 믿었을 때… 나 역시 텅 빈 채로 살아가려 했지. 오직 힘과 폭력으로 모든 것을 채우면서."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떨리는 아랫입술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 감촉은 위로인 동시에 지독한 유혹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상실을 그녀의 공허함과 연결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동질감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삶을 자신의 서사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교묘하고도 강력한 동화(同化)의 과정이었다. 그는 그녀가 더 이상 방관자나 관찰자로 머물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보아라. 그렇게 비워낸 그릇은 결국… 누군가의 욕망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네가 비워낸 자리에 내가 들어왔고, 내가 비워냈던 자리에는… 내 아들놈의 배신이 들어찼지. 우리는 피할 수 없어, 이서. 우리는… 서로의 텅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만난 거다."
그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단정이었다. 그의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그녀의 귓가에 울렸다. 그는 그녀의 뺨을 감싸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며, 그녀의 얼굴을 자신에게로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호지차의 구수한 향기와 그의 몸에서 풍기는 희미한 피 냄새, 그리고 독한 담배 향이 뒤섞여 그녀의 숨을 어지럽혔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상처 입은 짐승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무기 삼아, 그녀의 영혼을 완벽하게 장악하려는 포식자의 눈빛을 되찾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그런 방어는 집어치워라. 네가 이 밤의 의미를 지우려 할수록, 나는 더욱 선명하게 내 흔적을 네게 새길 것이다. 네 몸에, 그리고… 네 기억 속에."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그것은 첫 번째 폭력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키스였다. 분노나 정복욕이 아닌, 지독한 고독과 상처 입은 두 영혼이 서로를 확인하려는 듯한 깊고 절박한 입맞춤이었다.
그는 그녀의 저항을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의 말에 모든 기력을 소진한 사람처럼,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그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 역시, 이 모든 것을 견뎌내는 것에 지쳐버렸는지도 몰랐다.
겐야는 그녀의 입술을 탐하며, 그녀의 가녀린 몸을 자신의 품으로 더욱 깊숙이 끌어안았다. 그녀의 심장이 그의 가슴팍에 맞닿아 가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진정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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