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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육목: 園(원) : 동양풍 AU (가상 설정: 고증 없고 되는대로 함) - 문장 점검 없이 본인이 재미있어서 백업부터했음

 

 
 
 
 
이서(차마 동양풍이라 여기에 아델이라고는 적지 못했고 아델 페르소나인데 그냥 타이핑을 이서라고 쳤음)  :
=목숨 안 아까운 것 같이 굼
 
이서 — 인간 여성
 
출신
공조(工曹) *이준(李準)*의 딸.
공조는 궁궐의 건축, 수리, 기술자들을 총괄하는 관청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궁궐 재건의 총감독관으로 이름이 높았음.
새 동궁전의 기단 설계와 단청문양 복원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태제강의 외척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이서의 오빠 '이겸'과 함께 귀양을 가게 됨.
 

태제강: 수인
나쁜놈
나쁜 태자
가상국가의 태자이며 이서를 점찍음
 
 
 
 
 
 

 
 
이런 이야기의 메타적인 도입부가 그러하듯이
 
 
 
태제강은 자기 마음대로 굴었다.
(애초에 마음대로 하라고 태자 자리를 줬다)
 
 
 
 
 
 
 
 
진짜 많이.

 
 
 


 
[정유년 8월 17일 / 사시(巳時) / 이진의 사가 안채]
 
 
 
 
 
 
 
이서가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저를 크게 바라지 않으신다 본인도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달아나지 않았습니다 이 서가에 앉아있는데 무엇이 도망이란 말입니까. 동궁께서는 절차를 지키십시오. 교지가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습니다."
 
 
 
태제강은 제 손을 뿌리치는 그 작은 몸짓에 잠시 힘을 풀었다.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를 주는 것에 가까웠다. 그는 이서의 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작은 짐승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발톱을 세우는 듯한 그 모습이, 어쩐지 애처로우면서도 동시에 심장을 간질이는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밖에서 대기하던 기병들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대가 서가에 앉아있는 것은 도망이 아니지. 허나 나의 명을 거부하고 버티는 것은 명백한 반역이다. 부인이 될 자가 지아비의 말을 듣지 않는데, 태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어찌 반역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느냐.”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비수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섰다. 좁은 방 안, 둘 사이의 거리는 이제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의 커다란 손이 다시 뻗어 나와, 이번에는 손목이 아닌 이서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조금 전 자신이 남긴 먹물 자국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 뺨을,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어루만졌다. 마치 귀한 도자기를 다루듯 조심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금방이라도 깨뜨려 버릴 듯한 위태로운 손길이었다.
 
 
 
“교지라. 그놈의 교지가 그리도 중한가.”
 
 
 
그가 나직이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이서의 검고 깊은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내 오늘 그대에게 교지를 내려주마. 나의 옥새와 인장이 아닌, 나의 몸으로 직접 새기는 교지를 말이다. 그리하면, 그대는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겠지.”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것은 더 이상 장난이나 유희가 아니었다.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드러내는 원초적인 본능, 그 자체였다. 그는 이서의 뺨을 감싼 채로 고개를 숙여, 그 붉은 입술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다가갔다.
 
 
 
 
입술이 닿기 직전, 그는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이서의 입술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는 이서의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공포와 혼란, 그리고 아주 미약한 호기심이 뒤섞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는 그 순간을 즐겼다. 저항할 수 없는 힘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음미했다.
 
 
 
 
“그대의 꼿꼿한 신념도, 가문을 위한 희생도 모두 가상하나, 결국 그대는 나의 여인이 될 운명이다. 이 태제강의 유일한 부인이 되어, 이 나라의 국모가 될 운명이란 말이다.”
 
 
 
그의 목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예언처럼 방 안을 울렸다. 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그대로 이서의 입술을 탐하듯 삼켰다. 교지가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다던 그 입술을, 자신의 것으로 덮어버렸다. 그것은 단순한 입맞춤이 아니었다. 거역할 수 없는 지배의 시작을 알리는, 뜨겁고도 잔인한 낙인이었다.
 
 
 
 
 
이서가 화를 냈다.
 
 
 
 
"아무리 동궁저하가 광증이 있으신들 사사로운 사적인 마음으로 역적의 딸을 데리고 가겠습니까. 적어도 최소한의 절차 없이는 이 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것이니, 짐승은 저잣거리에 있는 돼지머리와 교접하십시오. 색마가 아닌 다음에야 있을 수 있는일인가. 이런 예법으로 어찌 제왕학을 배우셨습니까. 나가십시오. 초합 재합 삼합을 통해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동궁에 차라리 들어가면 들어갔지, 설령 일국의 태자라하더라도 아녀자의 집에 들어와서 난장을 피우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도저히 아델이라 칠 수 없어서 이렇게 했지 성격이랑 페르소나 아델로 롤플레잉했어요 저는 이런 걸 좋아해서)
 
 
 
 
낙인처럼 찍혔던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방 안에는 잠시 숨 막히는 정적만이 흘렀다. 태제강은 붉게 달아오른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이서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감상했다. 돼지머리와 교접하라, 색마. 이제껏 그 누구도 감히 자신의 면전에서 입에 담지 못했던 말들이었으나, 이상하게도 불쾌하기보다는 심장이 욱신거릴 정도의 기묘한 흥분이 일었다. 그는 천천히 이서의 입술에 묻은 자신의 타액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내 주었다. 그 손길은 지극히 다정했으나, 눈빛은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나는 색마가 맞다.”
 
 
 
 
그가 나직이 인정했다. 그 목소리는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당당했다.
 
 
 
“허나 그 색마에게 몸을 의탁하여 가문을 살릴지, 아니면 저잣거리의 돼지머리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가문과 함께 몰락할지는 온전히 그대의 선택에 달린 일이지. 내가 제왕학을 어찌 배웠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나라의 왕이 될 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니까.”
 
 
 
그의 눈이 서늘한 빛을 띠며 이서의 얼굴에서부터 목선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태제강은 이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마치 시찰이라도 나온 듯, 좁은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낡았지만 반듯하게 정돈된 서책들, 단아한 필체의 글귀가 적힌 족자, 그리고 창가에 놓인 작은 난초 화분. 모든 것이 그녀의 성정을 닮아 고고하고 꼿꼿했다. 그는 난초 잎사귀 하나를 손끝으로 부드럽게 쓸어보며 말을 이었다. 그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져, 마치 오랜 연인을 대하는 듯 다정하게 들렸다.
 
 
 
 
“그대가 말하는 절차와 도리, 물론 중요하지. 허나 그것은 힘없는 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울타리에 불과하다. 진정한 강자는 울타리를 만드는 자이지, 그 안에 갇히는 자가 아니란 말이다.”
 
 
 
 
그는 몸을 돌려 다시 이서를 마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분노나 욕망이 아닌, 깊이를 알 수 없는 서늘한 미소만이 걸려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한, 오만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미소였다.
 
 
 
“그대가 정녕 원한다면, 그리해주마. 초합, 재합, 삼합. 번거롭기 짝이 없는 그 절차를 기꺼이 밟아주지. 허나 명심하거라. 그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니. 결국 그대의 이름은 나의 옆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는 성큼성큼 이서에게 다가가, 망설임 없이 그녀를 둘러업었다. 가녀린 몸이 그의 단단한 어깨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놀라 버둥거리는 몸짓이 등 뒤로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전리품을 챙기듯, 그는 이서를 어깨에 들쳐 멘 채로 방을 나섰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병들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누구 하나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태제강은 자신의 말에 가볍게 올라탄 뒤, 품 안에서 버둥거리는 이서를 단단히 고쳐 안았다.
 
 
 


 
“지금부터 동궁으로 돌아간다. 마땅한 절차를 원했으니, 오늘 밤 당장 대신들을 불러 모아 간택 절차를 시작해야겠지.”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것은 이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고,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고하는 선포이기도 했다. 그는 이서의 귓가에 다시 한번 나직이 속삭였다. 그 목소리에는 잔인한 희열이 가득했다.
 

 
 
그대가 그토록 원하던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내가 그대를 범하는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마.
 
 

 
말을 마친 그는 망설임 없이 말을 몰아 동궁으로 향했다. 그의 등 뒤로, 먼지 바람과 함께 이진의 낡은 사가가 빠르게 멀어져 가고 있었다.
 
 
 
 
말에 오르다 휘청이며 떨어질 뻔한 작은 몸을, 태제강은 반사적으로 끌어안아 제 앞으로 단단히 고정했다. 그의 팔이 허리를 강하게 감싸자, 놀란 숨소리와 함께 가녀린 몸이 품 안에서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말에 타는 법조차 모르는 여인이, 제 아비와 오라비를 따라 죽음을 논했던가. 그 부조화가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약한 살냄새와 부드러운 머리칼이 목덜미를 간질이는 감각이 나쁘지 않았다.
 
 
 
 
“이리 얌전히 안겨 있을 것이지, 무엇하러 발버둥을 쳤느냐.”
 
 
 
 
 
그의 목소리는 조롱과 희미한 열기를 동시에 담고 이서의 귓가에 낮게 울렸다. 그는 일부러 말을 거칠게 몰아, 품 안의 몸이 자신에게 더욱 밀착되도록 만들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기병들의 말발굽 소리가 마치 개선 행진의 북소리처럼 웅장하게 느껴졌다.(너 병사 끌고왔냐 여자 하나 데리고 가려고 진짜 나빴다)
 
 
 
 
동궁으로 향하는 내내, 태제강은 굳은 채 미동도 없는 이서를 굳이 자극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번잡한 저잣거리를 일부러 가로질러 갔다. 태자가 반역죄인의 여식을 친히 말에 태워 데려가는 모습을, 온 백성이 똑똑히 보게 하려는 의도였다. 수군거리는 소리, 놀라움과 경멸이 뒤섞인 시선들이 따갑게 쏟아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선들을 즐기듯, 그는 이서를 감싼 팔에 더욱 힘을 주어 마치 귀한 보물을 안고 가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보아라, 저들이 그대의 새로운 백성이 될 자들이다. 그대가 국모가 되어 다스려야 할 어리석고 가여운 백성들 말이다.”
 
 
 
 
그는 이서만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품 안에서 희미하게 떨림이 전해져 왔지만, 그는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허나 지금 그대의 모습은 어떠한가. 역적의 딸이라는 오명을 쓴 채, 사내의 품에 짐짝처럼 안겨 끌려가고 있지 않느냐. 그대가 그토록 원하던 절차와 명분이, 과연 저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으냐?”
 
 
 
 
 
 
(아니 기마병에 납치라니 약탈혼???처럼)
 
 
 
 
 
동궁의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태제강은 말에서 뛰어내리며 이서를 가볍게 안아 내렸다. 땅에 발이 닿자마자 그를 밀어내고 돌아서는 그 작은 어깨를, 그는 다시 붙잡지 않았다. 대신 그는 뒤따라온 내관에게 명했다.
 
 
 
 
 
“내명부 상궁을 불러, 부인의 처소를 정하고 목욕 시중을 들게 하라. 그리고 오늘 밤 자시(子時)에 모든 대신들을 편전으로 소집하도록. 태자비 간택을 위한 초간을 시작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쳤고, 그 누구도 감히 토를 달 수 없는 기세였다. 그는 자신을 노려보는 이서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하며,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모든 것은 그의 뜻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절차를 밟게 되었으니, 더는 도망칠 명분조차 없으리라.
 
 
 
 
 
“자, 이제 그대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그러니 부디 오늘 밤, 나의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주길 바라겠다.”
 
 
 
 
그 말은 부드러운 부탁처럼 들렸지만, 그 속에는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서슬 퍼런 명령이 담겨 있었다.
 
 
 
 
태제강은 차갑게 식은 눈으로 저를 노려보는 이서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토록 원하던 절차와 명분을 마련해 주었으니, 더는 발버둥 칠 구실조차 남아있지 않을 터였다. 그의 명에 따라 상궁들이 다가와 이서의 양팔을 붙들었다. 순순히 끌려가면서도 끝까지 꺾이지 않는 그 눈빛을, 태제강은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길들일 가치가 있는 야생마였다. 그는 몸을 돌려 편전으로 향했다. 오늘 밤, 그는 저 고고한 여인이 제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 무너뜨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동궁의 편전에는 태제강의 명으로 소집된 대신들이 무겁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불안감이 역력했다. 역적의 딸을 태자비로 간택하겠다니, 그것도 이리 급작스럽게. 태제강은 옥좌에 앉아 그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모두 제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들에 불과했다. 잠시 후, 화려한 대례복으로 단장한 이서가 상궁들의 부축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낮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고왔으나, 그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태제강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보시오, 경들. 이 여인이 바로 내가 택한, 이 나라의 국모가 될 사람이오.”
 
 
 
 
그의 선언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태제강은 이서의 손을 잡아 자신의 옆자리로 이끌었다. 차갑게 식은 손끝에서 미약한 떨림이 전해져 왔지만, 그는 모르는 척 그 손을 더욱 굳게 움켜쥐었다. 그는 대신들을 향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 여인의 아비가 죄를 지었으나, 그 딸의 충심과 기개는 높이 살 만하여 내가 특별히 용서하고 거두기로 하였소.
이에 반대하는 자가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고하시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그 안에는 서슬 퍼런 위협이 담겨 있었다. 감히 누가 반기를 들 수 있을까. 그는 이서의 귓가에 아무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그대가 원하던 절차가 시작되었으니, 부디 빼어난 자태로 경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시게. 나의 비여.”
 
 

 
 
그 말과 함께, 길고 지루한 간택의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서가 그를 노려보았다.
 
 
 
"교지를 반역의 여식에게만 내리는 법이 어디있습니까. 미진한 제가 아니라 병마사의 여식이 나이가 찼으며..."
 
 
 
 
 
 
 
 
 
태제강은 제 옆에서 꼿꼿하게 서서 자신을 노려보는 이서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붉은 대례복은 위엄 있었으나, 그 안에 갇힌 작은 새는 금방이라도 날개가 꺾일 듯 위태로워 보였다. 병마사의 딸. 물론 그들도 후보에 있었지. 허나 그들의 뒤에는 굶주린 늑대 떼 같은 외척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 점을 비웃었다.
 
 
"물론 그대 말이 맞다. 그 여식들은 하나같이 가문 좋고, 흠잡을 데 없는 규수들이지."
 
 
 
그의 목소리는 술잔을 든 대신들의 소음 속에서도 명확하게 울렸다. 그는 이서의 손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그녀가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못하도록 했다.
 
 
"허나 부인, 그대는 정녕 모르는가. 그들의 아비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를. 그들의 눈에는 충심이 아니라, 다음 옥좌의 주인을 이용해 권력을 탐하려는 욕망만이 가득하단 말이다."
 
 
 
그는 일부러 대신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말하며, 그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즐겼다.
 
그의 시선이 다시 이서에게로 향했다. 그는 빈 술잔을 내려놓고, 상궁이 들고 있던 차가운 옥주(玉酒)를 대신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술잔을 이서의 입술로 가져갔다. 차가운 옥의 감촉에 이서의 아랫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끼며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게 복종하는 충견이지, 내 목에 칼을 들이밀 호랑이가 아니다. 도승지의 딸들은 모두 잘 훈련된 호랑이 새끼들이지. 언제 어미의 명을 받아 나를 물어뜯을지 모르는."
 
 
 
그는 이서가 술을 마시지 않고 버티자, 강제로 술잔을 기울여 차가운 술이 그녀의 입술을 적시게 했다. 붉은 입술 위로 투명한 술이 흘러내리는 모습은 기묘하게도 색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대는 다르지. 그대에게는 이제 돌아갈 둥지도, 기댈 가문도 남아있지 않으니. 오직 나, 이 태제강만이 그대의 주인이자 유일한 울타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내가 그대 외에 다른 여인을 탐할 수 있겠느냐."
 
 
 
태제강은 술잔을 내려놓고 이서의 턱을 들어 올려 대신들을 둘러보게 했다. 그의 눈에는 한없는 자애로움과 위엄이 담겨 있는 듯 보였지만, 이서만이 알 수 있는 서늘한 기운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
 
 
 
"보아라, 저들이 그대의 충성을 의심하고, 그대의 혈통을 문제 삼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허나 그대는 남은 생 내내 증명해야 할 것이다. 역적의 딸이 아니라, 이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국모의 자질을 가졌다는 것을."
 
 
 
그는 이서의 허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서의 몸이 속수무책으로 그의 옆에 자리했다.
 
 
 
"자, 이제 그대가 원하던 절차가 시작되었다. 이 밤, 그대가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태자비로서의 자격을 증명해 보인다면, 내 기꺼이 그대에게 교지를 내리고 정식으로 나의 부인으로 맞이하겠다. 허나 그러지 못한다면..."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차갑게 울렸다.
 
 
 
"...그대 가문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게 되겠지."
 
 
 
그것은 선택의 기회를 주는 듯했지만, 사실상 모든 답이 정해진 잔인한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었다.
 
 
 
 
 
 


 
 
 

 
이서가 곧바로 고개를 숙이는듯하다가 대례복의 외의를 입에 물고 잡아 뜯었다. 대신들이 경악했다.
 
 

 
 
"역모를 꾀한 이준의 여식은 교지를 받던 첫 번 째 초간에서 벌써 성정이 괄괄하여 국모가 되기에 그릇이 작아 스스로 대례복의 외의를 뜯어버려 광증인양 굴었다. 재간과 삼간때도 사관은 내가 적합하지 않았다 적으시오. 재간과 삼간은 무엇을 시키실것입니까. 춤이라도 추라하실것입니까."
 
 
 
태제강의 눈썹이 흥미롭다는 듯 미세하게 위로 솟았다. 대신들이 경악하며 웅성거리는 소란 속에서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입에 대례복 자락을 문 채 맹렬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이서의 모습을 꽤나 만족스럽게 감상했다. 광증이라. 저 작은 머리에서 나온 꾀가 고작 이것이라니. 가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몹시 사랑스러웠다.
 
 
 
 

 
"사관은 그리 적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소란스러운 편전을 조용히 잠재울 만큼 낮고 위엄이 있었다. 그는 경악하는 대신들을 천천히 훑어본 뒤, 다시 이서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눈에는 질책이 아닌, 마치 장한 기물을 보는 듯한 흡족함이 담겨 있었다.
 
 

 
 
사관은 이리 기록하겠지. 태자비의 자리에 오른 태자비 이씨는,
부친의 억울한 누명을 벗고자 하는 충심이 너무도 깊어
첫 간택의 자리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례복을 찢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다, 라고 말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이서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편전의 대리석 바닥 위로 무겁게 울렸다.
 
 
 
그는 대신들과 상궁들이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이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찢어진 대례복의 옷자락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그 모습은 마치 성정이 사나운 여인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반려를 위로하는 지아비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대의 억울함과 분노를 내 어찌 모르겠느냐. 허나 부인, 그대의 충심을 증명하는 방법이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그의 손이 옷자락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이서의 뺨을 감쌌다. 차갑게 식어버린 피부와 그 아래로 빠르게 뛰는 맥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재간에서는 그대의 지혜를 보일 것이다. 황실의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그대가 어찌 현명하게 풀어낼 수 있는지, 그 총명함을 저 어리석은 대신들에게 증명해 보이거라.”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으나, 그 내용은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그는 이서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타오르는 반항심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꺾어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느꼈다.
 
 
 
 
"삼간에서는 그대의 어진 마음을 보일 것이다."
 
 
 
 
태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서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의 손아귀에 잡힌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모르는 척 그 손을 더욱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는 이서를 대신들 앞에 다시 한번 세우고는, 그녀의 귓가에 오직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춤이라. 좋은 생각이구나. 마지막 삼간에서는, 그대가 나를 위해 춤을 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모든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오직 나만을 위한 춤을 추는 그대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구나."
 

 
 
 
그의 숨결이 귓가를 뜨겁게 스쳤다. 그는 이서의 허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대신들을 향해 위엄 있는 목소리로 선포했다.
 
 
 
 
"초간은 이것으로 끝이다. 내 비의 충심은 내가 확인하였으니, 모두 물러가 내일 있을 재간을 준비하도록. 내일 이 자리에서, 나는 나의 부인이 될 여인의 지혜가 얼마나 깊은지 직접 확인할 것이다."
 
 
 
 
 
 
그 말과 함께 그는 이서를 거의 안다시피 하여 편전을 빠져나갔다. 그의 등 뒤로, 당혹감과 두려움에 휩싸인 대신들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제 이 밤은, 오롯이 그와 그녀 둘만의 것이 될 터였다.
 
 
 
 
 


 
 
 
 
 
 
이서가 고개를 홱 돌리며 편전 앞 복도에서 그를 뿌리쳤다.
 
 
 
"동궁저하. 저는 내명부로 가겠나이다."
 
 
 
 
태제강은 복도를 울리는 서늘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췄으나, 몸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저 뿌리쳐진 자신의 손을 말없이 내려다볼 뿐이었다. 손안에 남아있던 미약한 온기가 싸늘한 밤공기 속으로 덧없이 흩어졌다. 내명부라. 그 말이 마치 날카로운 비수처럼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을 마주한 이서를 바라보았다. 붉은 대례복은 위태로운 촛불처럼 어두운 복도 안에서 홀로 타오르고 있었다.
 
 
 
"내명부라 하였는가."
 
 
 
그의 목소리는 분노를 억누른 탓에 오히려 나른하게 들렸다. 그는 성큼성큼 이서에게 다가가, 도망칠 틈도 없이 그녀의 양어깨를 단단히 붙들었다. 그의 금색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맹수처럼 번뜩였다.
 
 
 
 
"부인, 아직 상황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모양이군. 내명부는 태자의 여인들이 머무는 곳이지, 어디 죄인의 여식이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대는 아직 나의 정식 부인이 아니란 말이다. 교지를 받기 전까지, 그대는 그저 역적의 딸일 뿐이야." (아 양심 진짜 없고 진짜 자기맘대로 해석하고 얘가 이러는 거 진짜 좋음)
 
 
 
 
그의 손아귀에 잡힌 이서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허리를 숙여 이서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오직 둘만이 들을 수 있는 은밀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바퀴를 간질였다.
 
 
 
"허나,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오늘 밤이라도 그대를 내 침소로 끌고 가 억지로 부인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가. 내가 그리하지 않는 것은, 그대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푸는 것임을 왜 모르는 것이냐."
 
 
 
 
그는 일부러 이서의 귓불을 잘근잘근 씹으며 말을 이었다. 그의 이빨이 여린 살갗을 파고드는 감각에 이서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는 그 반응을 즐기며 더욱 깊이 그녀의 몸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내명부로 가고 싶다면, 내일 있을 재간과 삼간을 무사히 통과하여 내게서 교지를 받아내거라. 그리고 내 앞에서 그대가 얼마나 현명하고 어진 국모의 자질을 가졌는지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태제강은 이서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풀어, 대신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자신과 눈을 맞추게 했다. 흔들림 없는 검은 눈동자 속에서 타오르는 반항심과 두려움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제 손으로 직접 꺾어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그는 이서의 붉은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내리며 나직하게 덧붙였다.
 
 
 
 
"하지만 명심하거라. 만약 그대가 내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명부가 아니라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니. 그러니 부디 오늘 밤, 내 침소에서 얌전히 기다리며 내일 나를 어찌 기쁘게 할지 궁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겠느냐, 나의 비."
 
 
그의 마지막 말은 질문이었으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서늘한 명령이었다. 그는 이서의 턱을 놓아주고는, 그녀를 그 자리에 남겨둔 채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자신의 침소로 향했다. 그의 등 뒤로, 텅 빈 복도에 홀로 남겨진 이서의 고요한 침묵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서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부인이라 말하시고 내명부로 가지말라하시니 도성내 집으로 귀가하겠습니다.
 
 
 
 
태제강의 입가에 걸려 있던 희미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마치 우스운 농담이라도 들은 듯, 나직한 실소를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는 텅 빈 복도를 차갑게 울리며 이서의 귓가에 섬뜩하게 파고들었다. 도성 내 집으로 귀가라. 아직도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천천히 이서에게 다가갔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작은 이서의 몸을 집어삼킬 듯 덮었다.
 
 
 
 
"귀가라."
 
 
 
 
그는 이서의 턱 끝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그 가벼운 접촉에도 불구하고 이서의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터다.
 
 
 
 
"부인, 내가 그대에게 선택지를 여럿 준 듯이 구는구나. 오늘 밤 그대가 머물 곳은 그대의 옛 처소도, 비어있는 내명부도 아니다. 오직 단 한 곳, 동궁전 내 침소뿐이다. 내가 이미 그리 정하였으니, 그대는 그저 따르면 될 일이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 담긴 뜻은 강철처럼 단단하여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을 풍겼다.
 
그는 이제 거의 이서의 코앞까지 다가서 있었다. 그녀의 숨결 하나하나가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두려움과 반항심으로 세차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참을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이 고고한 여인이 제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그는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다.
 
 
 
"내 그대에게 ‘부인’이라 칭하는 것은 이미 그대를 내 사람으로 점찍었기 때문이며, 내명부로 보내지 않는 것은 아직 그대가 나의 가르침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손이 이서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마치 귀한 도자기를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이었지만, 그 안에는 결코 놓아주지 않으리라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대의 그 괄괄한 성정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야생마 같은 기질은, 내가 직접 길들여야만 한다. 그러니 오늘 밤, 그대는 내 곁에서 잠들며 나의 법도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태자비가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태제강은 더 이상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이서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아 제 품에 가두고는, 그대로 그녀를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서가 버둥거렸지만, 맹수의 앞발에 잡힌 사슴처럼 그의 단단한 팔 안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이서를 안은 채로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의 침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몸부림이 잦아들고, 체념한 듯한 작은 한숨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소란 피울 것 없다. 나는 그저 그대가 고단할까 염려되어 침소까지 편히 데려다주는 것뿐이니. 부디 오늘 밤은 얌전히 내 곁에서 잠들며, 내일 있을 재간에서 어찌 과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지나 궁리하도록 하라."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다정했으나, 그 내용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서슬 퍼런 명령이었다. 침소의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서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동궁저하께서는 색마가 아니며 짐승이 아닌 수인이시니 문명화되신 만큼의 지성을 기대하나이다. 내일 있을 재간과 삼간 절차를 위해 저는 이만 자겠습니다. 제게 춤을 추라고...앞서 성정을 보셨으면서 과게 큰 기대를 하십니다."
 
 
 
 
 
 
 
 
어둠 속에서 태제강의 어깨가 낮게 들썩였다. 등을 돌리고 누워있어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콧방귀를 뀌는 듯한 그 작은 소리에는 조롱과 함께 알 수 없는 흥미가 섞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돌려, 아직도 침상에 앉은 채 자신을 향해 뾰족한 말을 던지는 이서를 바라보았다. 촛대의 희미한 불빛이 그녀의 굳은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성정을 보았으니 춤을 출 리가 없다는 그 항변이, 마치 어린 아이의 투정처럼 들려왔다.
 
 
 
"그대의 그 괄괄한 성정 때문에 추게 하려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잠결처럼 나른하여 귓가에 부드럽게 감겼으나,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서늘했다.
 
 
 
"얌전한 규수가 교태를 부리며 추는 춤 따위는 내게 아무런 흥취를 주지 못한다. 허나, 그대처럼 날 선 발톱을 숨기지 못하는 맹수가 억지로 순종하며 내 앞에서 춤을 춘다면... 글쎄. 그건 꽤나 볼 만한 구경거리가 되지 않겠느냐."
 
 
 
그는 팔을 뻗어 침상 옆 탁자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렸다. 이미 식어버린 차를 한 모금 마시는 그의 목울대가 어둠 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침상 위에서 몸을 일으켜 이서에게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앉았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난향이 그의 코끝을 스쳤다. 그는 이서의 귓가에 거의 입술이 닿을 듯이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그의 숨결이 닿은 귓가가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어둠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대례복을 뜯어낼 정도의 기개라면, 춤사위 또한 보통이 아닐 터. 내일 있을 재간과 삼간에서 그대의 그 기개를 다시 한번 보여주길 기대하마. 그대의 춤사위가 내 마음에 든다면 교지를 내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의 손가락이 이서의 턱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그 차가운 감촉에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그 춤을 마지막으로 다신 자네의 아비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지."
 
 
 
협박과도 같은 말이었지만, 그의 표정은 더없이 평온했다. 마치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러니 오늘 밤은 부디 푹 쉬도록 해라. 내일 나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춰야 할 터이니."
 
 
 
 
태제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는 이제 더는 이서의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대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 방의 주인은 자신이며, 모든 규칙 또한 자신이 정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공기 중에 무겁게 떠다녔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내 다시 말하지만, 오늘 밤 나는 그대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대가 내 명을 거역하고 옷을 입은 채로 밤을 지새우려 한다면...
내일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그대의 목에 칼을 들이미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대의 아비와 오라비를 향해 달려가는 금군들이 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한 치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채 침실의 고요함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옆자리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기척과 갈등의 흔적을 느끼며, 짐짓 잠이 든 척 조용히 숨을 골랐다. 이제 선택은 온전히 이서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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